안녕하세요!
르완다에서 4개월 간의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어느덧 3주가 지나가는 시점입니다.
아직도 르완다에 다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그래도 지금은 현재의 삶으로 돌아가고 적응 중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2기 그리고 미래의 3기 단원분들에게
저희의 생생한 소감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해외봉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도, 진정 이 활동이 내게 큰 의미가 있을 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럼 1기 선배 단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1) 봉사단을 신청할 때 지원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었나요?
[🐰지유나 단원(리더, 회계)]
- 2월에 퇴사한 후 취업 준비 중이었습니다.
(취준생 화이팅~😊)
[🐼김지원 단원(보고서)]
-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정혜인 단원(액션플랜)]
- 대학교 막학기를 다니며 국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최예준 단원(SNS)]
- 대학 졸업 후 병원 입사발령 대기하며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2) 청년중기봉사단, 어떤 이유로 신청하셨나요?
[🐰지유나 단원(리더, 회계)]
- 평소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있었고 개발도상국 현장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김지원 단원(보고서)]
- 졸업 전 꿈꿔왔던 해외봉사를 통해 대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늘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한번도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정혜인 단원(액션플랜)]
- 아프리카로의 해외봉사가 어린시절부터 꿈이었는데 쉽지않던 와중 작년에 키르기스스탄으로 해외봉사를 갔던 적이 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적기라고 생각되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최예준 단원(SNS)]
- 미래에 아프리카 국가에서 해외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그 전에 꿈을 상상만 하지 않고 직접 경험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아프리카라는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도 궁금했고 봉사라는 것이 적성에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신청했습니다. ’의료봉사‘는 아니지만 ’르완다‘에서 ’보건‘ 분야를 맡아 봉사활동을 하게 되어 정말 값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3) 봉사활동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유나 단원(리더, 회계)]
- 특정 순간이라기보다는 봉사 초반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국내와 현지 단원들의 스타일이 모두 달라 서로 합을 맞추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현지 문화와 르완다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김지원 단원(보고서)]
- 문화 차이에서 오는 막막함과 좌절감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중엔 ‘아프리칸 타임’ 처럼 시간 관념에 대한 차이도 있었는데,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과 달리 르완다 사람들은 늘상 여유를 가지는 ’나키바조(No problem)'가 삶 자체인 사람들 이었습니다. 현지 단원과 미팅 약속을 잡아도, 기관에 업무 요청을 해도, 택시를 잡아도 ‘아프리칸 타임‘으로 약속 시간보다 늦춰지기 일쑤였고 이는 르완다 생활에 적응하는데 있어 제가 이해해야할 가장 큰 요소였던것 같습니다. 그들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독촉하고, 화를 낸다면 결국 답답해 화병에 걸리는건 나 자신이었습니다😂. 현지단원을 만날 땐 실제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약속을 잡고, 기관에는 최대한의 기간을 잡아 업무를 요청하고, 5분이면 도착한다는 택시기사의 말은 10분으로 이해하며 조금씩 르완다의 삶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정혜인 단원(액션플랜)]
- 처음 현지에 도착하고 현지적응기간이었던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을 마주하며 적응해나가는 처음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최예준 단원(SNS)]
-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현지단원들과 함께 거버넌스를 이루어가는 것이었어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르완다 단원과 한국에서 줌으로 소통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어요. 흑인영어라고도 하죠. Wow 정말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듣고 이해도 안되는 날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르완다에서 대면하여 소통할 때도 힘들었어요..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르완다의 문화인건지 분별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서로 다른 모습을 인정하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ㅎㅎ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점점 서로를 알게 되었고 이해하는 마음도 생겨났습니다. 물론 이제 그들이 말하는 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귀도 열렸어요👂🏻 (토익 리스닝 만점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4) 4개월간 잊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은?
[🐰지유나 단원(리더, 회계)]
- 저희 팀에서 개최한 평화축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며 기념하는 행사였고 저희 팀이 가장 공을 들인 프로젝트 중 하나였어요. 특히 여러 팀들과 협업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만든 점이 의미 있었습니다. 가장 바빴고 정신없던 하루였지만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지원 단원(보고서)]
-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Karama 마을의 청소년 친구들을 교육했던 순간들, 팀원들과 활동 후 함께한 저녁 식사들, 현지단원들과 한식당에서의 회식, 룸메이트들과 숙소에서 함께한 시간들, 키갈리 근교를 여행했던 순간들 등 여러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정혜인 단원(액션플랜)]
- 퇴근 후 숙소에서 르완다의 야경을 보며 팀원들과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었던 순간입니다. 팀원들과 함께한 시간들 중 가장 팀원들의 소중함을 느꼈던것 같습니다.
[🐶최예준 단원(SNS)]
- 4개월간 모든 날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선한 장면은 늦은 밤까지 르완다의 모든 팀원들과 함께 평화축제를 준비했던 날과 Karama 학생들과 함께 평화축제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의 순간, 4개월 간의 모든 활동을 마친 후 karama 학생들과 함께 눈물과 밝은 미소로 작별인사한 것입니다.
5) 귀국 후 현재 소감은 어떠신가요?
[🐰지유나 단원(리더, 회계)]
- 기획했던 바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고 르완다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김지원 단원(보고서)]
- 귀국 후 약 일주일은 몸만 한국에 온 채 마음은 여전히 르완다에 두고 온 기분이었습니다. 교육했던 학생들, 현지 팀원들, 내가 살던 동네 Gisozi, 길에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인사하던 아이들과 사람들...이 모든 것들이 그리워 한동안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르완다 얘기만 했던것 같습니다. 르완다 친구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덕분에 너무나 따뜻한 연말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너무 그리워요😭
[🦊정혜인 단원(액션플랜)]
- 한국에서의 적응기간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은 도로도, 한국어로 주문하는것도 다 신기할 따름입니다.
[🐶최예준 단원(SNS)]
- 귀국하고 2024년의 끝날까지 저는 계속 르완다에 있는 것 같았어요. 금방이라도 돌아가야할 것만 같은 기분..?
작년 5월 말, 청년중기봉사단 공고를 보고 바로 서류를 제출했던 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만큼 르완다에서의 4개월이 저에겐 평생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경험으로, 순간들로 남을 것 같기 때문이에요!
Kunda Rwanda🩵
6) 활동 후 ‘나’에게 생긴 변화는?
[🐰지유나 단원(리더, 회계)]
- 조금 더 J 성향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이전에도 업무할 때는 계획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개도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미리 준비하고 차근차근 실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더 깊이 깨달았습니다.
[🐼김지원 단원(보고서)]
- 제 스스로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늘 오픈 마인드에 타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그곳의 사람들과 살아가려 하니 나의 기준, 나의 가치로 판단하고 그들를 이해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새롭고 다양한 곳임을 알아가는 것 같고, 그런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모든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했던 저를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혜인 단원(액션플랜)]
- 보다 포용력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르완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대처하며 유연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최예준 단원(SNS)]
- 르완다의 나키바조 문화가 그대로 저에게 입혀진 것 같아요. 현재 한국에서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혼자있을때도 나키바조(no problem)을 외치고 ‘예고~ 비자 차네~(yes very good)’을 외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앞으로도 No problem, 나키바조의 마인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합니다☺️
7) 이 기억을 가지고 그대로 4개월 전으로 돌아간다면, 지원하시겠습니까?
[🐰지유나 단원(리더, 회계)]
- 르완다에서 단원들끼리 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솔직히 지원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었습니다. 4개월간의 과정이 쉽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국내 성과공유회와 마지막 리더 모임을 마친 지금은 다시 돌아가도 지원할 것 같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을 이번 경험을 통해 더 지혜롭게 대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지원 단원(보고서)]
- 네!!! 완전 나키바조 입니다~! No problem ~
(여기도 저와 같은 분이 한 분 있네요😆)
[🦊정혜인 단원(액션플랜)]
- 네. 잃은 것도 많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기에 돌아가도 지원할 것 같습니다.
[🐶최예준 단원(SNS)]
- Yego! 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저는 저희 팀원들을 더 사랑하고 싶고 밥도 같이 많이 먹어주고..
현지단원들과도, 저희 학생들과도 프로그램 외에도 사적으로 만나서 많이 놀고 싶네요!
르완다에 있는 친구들이 문득 많이 그립습니다.
네 여기까지 저희 르완다포에버의 이야기였습니다!
팀원들의 소감을 다시 보며 르완다에서의 생활이 다시 떠올랐는데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보니
분명 2기, 3기 단원분들도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 추억 쌓고 더욱 성장해서 돌아오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미련과 아쉬운 마음은 여기 다 접어두고
저희들은 더 발전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때를 기약하며
이만 글을 마쳐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르완다포에버의 활동을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Murakoze cy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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